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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에 정착한 청교도들의 감사 축제

추수감사절이다. 영어로는 생스기빙 데이(Thanksgiving Day)다.     크리스마스와 마찬가지로 추수감사절도 개신교(크리스찬) 할러데이다. 구약 성경의 맥추절(the Feast of Harvest)이 추수감사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맥추절은 5월 중순에서 6월 중순 밀(wheat) 추수가 끝날 무렵 우량품들을 하나님께 먼저 바치는 추수 감사제였다.     추수감사절은 11월 넷째주 목요일이지만 추수감사주일은 11월 셋째주 일요일이다. 이날은 북미 대륙을 개척한 청교도들(Pilgrims)에게 감사의 마음을 되새기는 날이다. 청교도들은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지의 북미 대륙으로 건너온 경건한 신앙인들이다.   청교도들이 북미로 오게 된 역사적 배경은 영국 헨리 8세와 제임스 1세 찰스 1세 때 이어진 종교 박해였다. 순례자의 조상들(Pilgrim's Fathers)이라 불리는 영국 청교도들은 1600년대 초기부터 대서양을 건너 미 대륙으로 이주했다. 이중 102명의 청교도는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북미 대륙으로 향했다.     영국 남해안 플리머스(Plymouth) 항구에서 1620년 8월 5일 스피드웰(Speedwell)과 메이플라워(Mayflower)호를 타고 미 대륙을 향해 항해했다. 그러나 항해 초반부터 배가 고장나 물이 새면서 귀항했다. 한 달 뒤인 9월 6일 결국 메이플라워호만 25명의 선원과 102명의 청교도가 승선해 미국 동해(대서양) 중부지방 버지니아를 목적지로 삼고 다시 출발했다.     남자 78명과 여자 24명 전체 102명이 출발해 항해 도중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태어났다. 그해 11월 11일 버지니아 대신 동북부 매사추세츠 케이퍼 카드(Cape Cod) 해안가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5일간 주위를 답사한 후 11월 16일 플리머스에 정착했다. 63일간 3400마일의 항해. 위험천만한 도전 끝에 닻을 내렸다.     영국을 떠날 때 항구 이름을 따라 이곳을 플리머스라 명명했다.   미국 동해안은 항상 북서풍이 분다. 때문에 남쪽 버지니아로 가려던 배가 북쪽 매사추세츠에 도달했다. 이들의 신앙심은 대단했다. 토요일에 도착했고 길고도 위험한 항해를 거쳤음에도 주일을 배 안에서 보냈다.     항해하는 동안 찬송가가 울려퍼졌다. 이들은 훗날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대부분 시편을 찬송으로 불렀다. 주일은 모두가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했다."   청교도 개척자들은 무사히 신대륙에 도착했지만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11월 중순 도착한 이들은 강풍과 눈보라 치는 혹독한 추위 질병과 식량 부족 원주민들의 냉대 들짐승들의 위험과 싸워야 했다.     이때 이들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겪었는지 숫자가 말해준다. 1620년~1621년 겨울 2~3개월  동안 102명 청교도 중 절반 이상이 사망했다.   특히 1~2월의 혹독한 겨울에는 하루에 2-3명씩 사망했다. 생존자는 50명에 불과했다. 이들 대다수도 지치고 건강이 쇠약해져 질병으로 신음했다.     이런 와중에 땔감을 마련하고 침실을 만들고 병자들을 간호하며 병자들과 노약자들의 옷을 빨아입히고 칠면조와 사슴 등을 사냥하여 고기를 조달하는 청교도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그래도 따스한 봄날은 왔다.     청교도들은 땅을 개간하고 씨를 뿌리고 가꾸었다. 그해 가을 기대 이상의 추수를 했다. 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에게 감사하며 찬양했다. 엄동설한에 황무지에서 살아남은 것은 하나님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는 이들의 믿음이다. 미 대륙 개척자들로 삼아주신 것에 대해 하나님 앞에 감사드렸다.   청교도들은 북아메리카로 건너 온 이듬해인 1661년 가을부터 하나님께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렸다.   추수한 첫 곡식과 채소 중 최고 우량품들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께 바쳤다. "우리는 대서양을 건너와 여러 친구들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리나이다." 그들은 기도했다.     청교도들은 첫 추수감사절 첫날인 주일에 온종일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찬송가를 불렀다. 둘째날에는 칠면조 요리 감자 옥수수 요리 등을 만들어 서로 나눠먹었다. 셋째날에는 인디언 추장 마싸소이트 등을 초대해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친교했다.   90명의 원주민 인디언은 칠면조 구운 요리와 호박파이를 가져와 친교했다. 바로 추수감사절의 시초다. 이것이 유래가 돼 추수감사절에는 칠면조 고기와 호박 파이를 먹는 전통이 세워졌다.   청교도들은 통나무들을 잘라 먼저 교회를 지었다. 이어 학교를 지은 뒤 자신들의 집을 지었다. 철저한 주일 성수 십일조 경건생활을 했다.   1623년 정착지 플리머스 책임 행정관 윌리엄 브래드포드는 추수감사절을 공식 선언했다. 1789년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국가 기념일로 선포했다.     추수감사절은 지역마다 날짜가 제각각이었으나 1863년 16대 대통령이자 최초의 공화당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에 의해 11월 넷째 주 목요일로 통일됐다. 원용석 기자아메리카 청교도 청교도 개척자들 북미 대륙 남해안 플리머스

202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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